보드게임으로 지는 법 배우기, 울던 아이가 '한 판 더'라고 하기까지
다섯 살 딸이 할리갈리 한 판 지고 나서 울먹이며 물어봤어요. "엄마가 일부러 이긴 거지?" 게임이 재밌어 보여서 시작했는데, 지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나 봐요.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열 살. 보드게임에서 지면 "아 아쉽네, 한 판 더?" 해요. 3년 동안 할리갈리, 셈셈피자, 블루마블을 수도 없이 하면서 배운 건 게임 규칙이 아니라 인생이었어요.
보드게임은 지는 법을 가르치는 도구예요
보드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더라고요. 지는 법, 기다리는 법, 규칙 지키는 법을 집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배우는 도구였어요. 학원에서도, 문제집으로도 가르치기 어려운 것들이 게임판 위에서는 저절로 익혀졌어요. 특히 감정 조절이 어려운 유아·초등 저학년 시기에는 보드게임이 가장 효과적인 사회성 연습 도구가 되더라고요. 저희 집은 3년 동안 할리갈리, 셈셈피자, 블루마블을 반복했고, 그 시간이 아이의 감정과 태도를 조용히 바꿔놨어요.
![]() |
할리갈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기억나요. 딸이 한 번 이기면 신나서 방방 뛰고, 한 번 지면 "엄마가 너무 빨리 쳤어!" 하면서 울더라고요. 셈셈피자도 비슷했어요. 제가 피자 조각을 많이 가져가면 "엄마가 다 가져갔어!" 하면서 삐졌어요. 블루마블은 더 심했죠. 한 시간쯤 하다가 제가 이기면 "엄마 돈 너무 많아!" 하면서 게임판을 확 뒤집을 뻔했어요.
일부러 져주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고민 많이 했어요. 일부러 져줄까? 근데 안 그랬어요. 일부러 져주면 아이는 결과가 조작된 것이라는 걸 어느 순간 느껴요. 공평한 경쟁 경험이 있어야 실력으로 이기는 기쁨을 알고, 지더라도 납득할 수 있거든요. "게임은 공평한 거야. 엄마도 최선을 다하는 거고, 너도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래야 이겼을 때 진짜 기분 좋잖아." 한 달, 두 달 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엄마가 실수로 종을 잘못 쳤을 때 "엄마도 틀리네!" 하면서 웃던 그 순간, 아이가 진짜 게임이 뭔지 느낀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이기고 지는 걸 받아들이는 게 제일 오래 걸렸어요. 7살까지도 가끔 울었어요. "또 엄마가 이겼어. 나는 맨날 져." "오늘은 엄마가 이겼지만, 지난번엔 네가 이겼잖아. 다음엔 또 네가 이길 수도 있어." 이걸 몇십 번 말했을까요. 8살쯤 되니까 달라지더라고요. 게임에서 지고 나서 "아 아쉽네!" 하고 잠깐 풀 죽어있다가 "엄마, 한 판 더 할래?" 해요. 지는 게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걸, 지고 나서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걸 배운 거예요.
보드게임이 아이에게 준 변화 5가지
3년을 꾸준히 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게 있어요. 첫째, 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어요. 둘째,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인내력이 늘었어요. 셋째, 지고 나서도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도전하는 힘이 생겼어요. 넷째, 셈셈피자와 블루마블을 하면서 덧셈, 뺄셈, 돈 계산이 자연스럽게 익혀졌어요. 문제집으로 가르친 적 없는데 게임하면서 저절로 배웠어요. 다섯째, 블루마블 두 시간을 앉아서 해낼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겼어요. 공부도 결국 앉아있는 힘이거든요.
보드게임 시작하려는 부모에게
다섯 살 이상이라면 할리갈리 같은 간단한 게임부터 시작하면 딱 좋아요. 일부러 져주지 마세요. 공평하게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아이가 진짜 실력으로 이기는 기쁨을 알아요. 지면 울어도 괜찮아요. 울 때마다 "다음에 또 해보자" 해주면 돼요. 중단하지 말고 감정을 공감한 뒤 재도전하게 해주세요. 난이도는 천천히 올리고, 할리갈리에서 셈셈피자, 블루마블 순서로 가면 자연스러워요. 일주일에 두세 번, 꾸준히 하는 게 핵심이에요.
지금도 저녁 먹고 나면 "엄마, 오늘 뭐 할까?" 하면 "보드게임 할래?" 해요. 웃고, 아쉬워하고, 다시 도전하는 그 시간이 좋아요. 보드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가 지는 법과 다시 도전하는 힘을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어요. 처음엔 울고 싸워도 괜찮아요. 3년 후엔 "한 판 더!" 하는 아이를 보게 될 테니까요.
.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