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기다렸더니 일주일 만에 배우더라고요

"우리 애 벌써 영어 학원 다닌대요." 카페에서 엄마들 얘기 들으면 마음이 급해져요. 우리 딸은 아직 한글도 완벽하지 않은데, 옆집 애는 벌써 선행학습 6개월 나갔다니.

몇 년 전 저도 그랬어요. 남들 다 한다니까 우리도 해야 할 것 같고, 뒤처지면 안 될 것 같고. 근데 10년 키우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남들보다 빨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한테 맞는 '제때'가 중요하더라고요.

한글, 너무 일찍 시작했던 실수

딸이 다섯 살 때였어요. 주변에서 "요즘은 다들 한글 일찍 뗀다"고 하길래 저도 조급해졌어요. 한글 학습지 시켰죠. 근데 애가 힘들어하더라고요. 자음 모음 외우는 거 싫다고, 그림책만 보고 싶다고. 억지로 앉혀놓고 "ㄱ ㄴ ㄷ" 따라 쓰라고 했는데 울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왜 이것도 못 해?"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해요. 3개월 정도 끙끙대다가 그냥 접었어요.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요.

그리고 1년 후, 딱 1년 후에 애가 갑자기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치킨' 어떻게 써?" 그때부터 스펀지처럼 흡수했어요. 제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간판 보면서 "엄마 저기 '문구점'이야?" 하고, 마트 전단지 보면서 혼자 읽고. 아, 이게 '때'구나. 애가 준비됐을 때 시작하는 게 맞는 거구나.

자전거도 똑같았어요. 7살 때 자전거 가르쳤어요. 주변에서 "요즘 애들 다 타는데 너희 애는 왜 안 타?" 해서요. 공원 가서 연습시켰는데, 애가 무서워했어요. 넘어질까 봐. 보조 바퀴 떼는 것도 무서워하고. 한 달 정도 매주 나갔는데, 애는 울고 저는 짜증 나고. "남들은 다 타는데 너는 왜!" 이런 말까지 했어요.

7살로보이는 여아가 자전거 혼자 타는 모습에 줄거워함


그러다 또 접었어요. 그리고 8살 여름. 친구가 자전거 타는 거 보고 갑자기 "나도 할래!" 하더라고요. 그날부터 매일 자전거 타겠다고 졸랐어요. 일주일 만에 보조 바퀴 떼고, 한 달 후엔 혼자 씽씽 타고 다니더라고요. 1년 전에 그렇게 힘들어했던 게 뭐였나 싶을 정도로.

'때'는 아이마다 달라요

책은 세 살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래서 거실에 책장 놓고 매일 읽어줬죠. 근데 수학은 일곱 살 되어서야 관심 보였어요. 그때부터 블록으로 놀고, 요리하면서 계량컵 보고 그랬어요. 만약 제가 "수학은 다섯 살부터 해야 해!"라고 억지로 시켰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애는 수학 싫어하는 아이가 됐을 거예요.

주변 보면 한글 빨리 뗀 애들 있어요. 네 살에 떼는 애도 있고요. 반대로 초등 들어가서 떼는 애도 있어요. 근데 초등 3학년 되면 다 똑같아요. 누가 먼저 뗐는지 안 보여요.

차이가 하나 있다면요. 일찍 시작해서 억지로 배운 애들은 그 과정이 괴로웠어요. 엄마한테 혼나고, 자기는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신감 떨어지고. 제때 시작한 애들은 즐거웠어요. 스스로 하고 싶어서 시작했으니까 재밌고, 잘 안 돼도 또 하고 싶고, 성취감도 크고.

애들은 신호를 보내요

10년 키우면서 깨달은 건데, 애들은 준비됐을 때 신호를 보내요. 갑자기 관심 갖고, 물어보고, 하고 싶다고 해요. 예전엔 제가 그 신호를 못 봤어요. 제 타이밍에만 집중하니까. "지금 안 하면 늦어!" 이것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달라요. 애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요. 그리고 신호 오면 바로 시작해요. 요즘 딸이 분수에 관심 보여요. "엄마, 1/2이랑 2/4가 같은 거야?"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피자 먹을 때, 케이크 자를 때 분수 얘기해요. "이거 반 잘랐으니까 1/2이지?" 하면서요. 애가 재밌어해요. 제가 문제집 펴라고 한 적 없는데 스스로 이해하고 있어요. 이게 '때'예요. 애가 하고 싶을 때.

솔직히 말하면, 기다리는 게 정말 힘들어요. "너희 애는 아직도 한글 못 떼?" 하면 불안해요. '내가 너무 느긋한 건가?' '우리 애만 뒤처지는 건가?' 근데 제가 스스로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지금 못하는 게 평생 못하는 게 아니야."

한글도 언젠간 떼요. 자전거도 언젠간 타요. 구구단도 언젠간 외워요. 그걸 다섯 살에 하느냐 일곱 살에 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다 해요. 그런데 억지로 시켰다가 생기는 상처는 평생 가요. "나는 뭐든 못해" "엄마는 나한테 늘 화내" 이런 감정은 쉽게 안 사라져요.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 근육으로 하는 거예요. 그 근육을 키우려면 억지로 앉히는 게 아니라, 앉아있는 게 즐거워야 해요. 제때 시작하면 즐거워요. 억지로 하면 괴로워요.

제일 어려운 게 이거예요. 남들이랑 비교 안 하기. "○○이는 벌써 영어 학원 다닌대" "△△이는 피아노 학원 두 군데 다닌대" "◇◇이는 수학 선행 6개월 나갔대" 들으면 불안해요. 우리도 해야 하나.

근데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는 ○○이고, 우리 애는 우리 애다.' ○○이한테 맞는 타이밍이 우리 애한테도 맞는 건 아니에요. 우리 애는 우리 애만의 시간표가 있어요. 그걸 믿고 기다려주는 게 엄마 역할인 것 같아요.

'적기 교육'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요. 애 관찰하고, 준비됐을 때 시작하고, 억지로 안 시키고. 이게 전부예요. 그리고 제때 시작한 애들 보면, 훨씬 빨리 배워요. 억지로 1년 끌던 것을 한 달 만에 마스터해요. 본인이 원해서 하니까요.

남들보다 빨리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애한테 맞는 '제때'가 중요해요. 오늘도 남들과 비교하면서 조급해지는 엄마들. 저도 아직 그래요. 근데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우리 애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잘 크고 있으니까요.